본문 바로가기
월말정산/2020

12월 월말정산

by _hailey 2020. 12. 31.

 

 

새벽에서 전철




코로나 바이러스가 너무 심각해서 거의 집에 있었다. 금요일 저녁에 퇴근하면 월요일 출근할때 집밖을 나서는 식으로. 운동도, 등산도 하지 못했다. 안했다. 아무에게도 보여주지못할 글을 쓰거나 유행 지난 자기개발서를 읽으면서 나에게 현실성이 부족한 일들에 대한 동기부여만 계속했다. 어떻게든 잘 살고는 싶은데, 방법도 방향도 막연하고, 무엇보다도 용기를 잃었다. 일은 벌려놓는게 미덕이라고 생각했는데, 일찍 일어나는 새는 당연히 피곤하니까. 내 스스로를 과대평가 한 탓인지, 욕심이 체력을 못버티는 상황을 여름부터 가을까지 내내 겪었다. 다시 일어나고 싶은데, 또 브레이크 안챙기고 무작정 뛰쳐 나가는건 아닌것 같아서 내 눈치만 보고있다. 하던일을 꾸준히 일정한 텐션으로 할 수 없다면 "대충이라도 지속하자" 가 모토가 되었다. 욕심만으로 성장할 수 없다는걸 조금 인정할 수 있게 된것같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요양병원에 들어가신지 1년 반만이다. 기억도 나지 않는 정말 어렸을때, 엄마가 날 낳은 직후 자간전증으로 입원해 있던 몇개월동안 날 돌봐주셨고, 초등학생때 한달, 고등학생때 한달. 요양병원에 들어가시기 전. 이렇게 할머니의 모습이 기억난다. 할머니는 배지밀 두유를 좋아했다. 언제나 새벽에 일어나서는 가만히 창가에 앉아 알수없는 노래를 흥얼거렸고, 무슨 노랜지 물어보면 자신도 모르지만 어디선가 들었던 노래같다고 했다. 단둘이 있으면 절대 먼저 말거는 법이 없던 그녀와 했던 대화는 언제나 엄마 속썩이지말고 시집 잘 가는게 니가 해야할일이다 라는 말로 끝났다. 

할머니와 함께했을때나, 떨어져있을때나 할머니를 추억하는 일은 엄마를 위한 일이었다. 할머니는 우리 엄마의 엄마였고, 난 그녀에게 막내딸의 딸이었다. 엄마를 생각하면, 할머니에게 미안했다. 어렸을때는 엄마를 힘들게 했다는, 어쩌면 엄마의 인생을 망쳤다는 죄책감때문에 의식적으로 피하기도 했다. 친가보다는 덜했지만, 한집건너 모여 사는 친척들 사이에서 나는 정체를 알수없는 외계인 같은 존재였고, 서로가 서로에게 어떤 말을 건네야할지 고민했다. 손녀로서 만나는 할머니도 마찬가지였다. 죄책감을 떨치고 난 후에는 긴 세월을 고생스럽게 지나온, 이제 무언가 새로운 시작보다는 마음을 정리해야 하는 일이 우선순위가 된 여자 앞에서 어리석은 나는 항상 어떤 표정을 지어야할지 몰랐다.

300km를 달려 비로소 마주한 그녀의 영정사진 앞에서도 나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랐다. 2달만에 본 엄마는 2달동안인지, 요 며칠동안 빠진건지, 탈수 직전으로 피곤해보였고 친척들은 날 알아보지도 못했다. 향이 벤 국화꽃을 성경 옆에 놓으면서 할머니가 교회를 꽤 오래 다녔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입관예배를 드리고, 넌 결혼은 언제하냐는 질문을 뒤로하고 코로나를 핑계로 도망치듯이 서울행 버스에 올랐다. 요 몇달간 운적이 없었는데 손님이라곤 나밖에 없는 리무진 버스에서 숨죽여 울었다. 어딘가 구멍난 마음을 가지고 집에 왔다. 고장나고, 구멍났는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채워야 할지 잘 모르겠다. 할말도 없고 용건도 없는데 자꾸만 엄마에게 전화를 건다. 10살 모습으로 내 기억에 있었지만, 이젠 결혼 3년차라는 사촌오빠가 한 별일 없으면 10년, 20년 후에나 보겠네 라는 말을 떠올릴때마다 구멍이 조금 더 커지는 것 같다. 

왠일인지 바짝 말라 죽어버린 한 녀석을 잘라낸 우리집 소포라는 이사온 뒤로 하얀 새 잎을 마음껏 피워내며 자라다가 다시 노랗게 색을 바꾸고있다. 가을이든 겨울이든 잎이 떨어지고 단풍이 드는건 그렇다 치는데 이녀석의 시간은 어떻게 흐르는건지, 당췌 알수가 없다. 지난달에 남천을 하나 더 들였는데, 우리집에 왔을떄는 단풍이 들어서 왔다가 지금은 또 파랗기만 하다. 식물을 더 들여야겠다. 

가끔씩 왕십리역 시계탑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상상을 한다. 오거리를 통과하기 전 역 광장의 복잡한 횡단보도를 따라 사람들이 분주히 발을 옮긴다. 자동차 엔진소리, 교통 경찰의 휘슬소리, 역사 쇼핑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소리. 누구를 기다리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기다리다 기다리다 떠날때도 있고, 때로는  마침내 만나서는 사람들 사이로 사라진다. 근처에 다니던 화실, 조금만 더 나가면 밤과 낮이 바뀐 동대문, 영업시간이 끝날때까지 있던 지하서점. 김치찌개만 먹고 나오던 장어구이집. 학교앞 유일하게 새벽까지 하던 카페. 요즘 들어 자꾸만 그때의 기억이 난다. 매일매일이 죽고싶었지만 동시에 살고싶었던 시간들. 누군가와 만나서 얘기하면 그렇게 좋을 수 없던 시간들. 퇴근하고 신발도 벗지 않은채 현관에 쓰러져 뜨거운 바닥에 뺨을 대고 잠들기 직전이면 창밖으로부터 기다렸다는 듯이 지하철의 바퀴소리가 들리는. 나는 또 멍청하게도 그때가 그리운가보다. 그 고통과 열정들이.

 

 

반응형

'월말정산 > 2020'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0 연말정산  (0) 2021.01.02
11월 월말정산  (0) 2020.12.05
10월 월말정산  (0) 2020.11.05
9월 월말정산  (0) 2020.10.11
7월, 8월 월말정산  (4) 2020.0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