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했던 10월이 지나간다. 2020년도 두 달이 채 남지 않았다. 이번 달은 도심을 벗어나는데만 온 신경을 집중했다. 긴 추석 연휴가 시작되면서부터 쫓기듯이 산을 찾아다녔다. 사는 곳이 변하고 눈에 보이는 것이 변하면서, 생각도, 일상도 흔들리니 다시 강박적인 성격이 고개를 들었다. 가을이니까, 단풍철이니까 를 핑계 삼아서는 혼자되어 거울을 들여다볼 수 없게 시간에 틈을 주지 않았다. 일주일이 채 가기 전에 다음 여행 장소를 물색하고 준비하고, 주말이 되기 전부터 머릿속에 온통 떠나야겠다는 생각뿐으로 지냈다.
관악산을 시작으로 추석 연휴가 끝나기 전 치악산에 다녀왔고, 둘째 주에 지리산, 셋째 주에 설악산, 넷째 주에 화왕산에 다녀왔다. 진행된 모든 등산은 계획된 게 아닌 월요일 출근해서 근무 중에 결정된 일이었다. 매 주말마다 산을 타니 매주 여행 가는 기분이고 즐겁고 신나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광활한 자연에서 다시 도심과 일상으로 돌아올 때마다의 그 낙차를 견디기 어려웠다. 평일 내내 떠날 생각에 설레는 마음보다는 마치 처음부터 그곳이 내가 있었어야 할 장소인 것처럼 산에 있지 않았던 시간들을 견디며 지루해했고, 그렇게 반짝 산행 후 돌아오는 길엔 밀려오는 허무함을 폭식으로 달랬다. 10시간이 넘는 산행이 연속되다 보니 근육이 붙으면서 몸의 형태도 달라졌다. 거울 안의 나는 누가 봐도 운동하는 사람의 몸이었다. 무릎과 허벅지는 근육으로 두드러지고 등산화로 차마 보호되지 못한 험한 산길에 다리는 군데군데 멍이 들었다. 발톱은 돌부리에 부딪혀 까맣게 변하거나 깨져있고, 굳은살이 박였다. 장시간 산행에 소모되는 칼로리만큼 먹는 양도 늘어났다. 이 모든 것이 내가 원하던 것이었거나 예상한 결과는 아니었다. 중독적으로 산을 계속 타야 하는 건지, 이사 온 집과 낯선 환경들을 마주하기 싫어 외면했던 붕 떠있는 잔잔하고 지루한 일상에 적응하는 연습을 해야 하는 건지 매주 혼란스러워하며 지냈다.
아는 동생의 추천으로 F45 트레이닝을 시작하게 되었다. F45는 고강도 인터벌 트레이닝 (HITT) 이고, 45분 동안 일정 심박수를 유지하면서 기능적 움직임을 수행한다 뭐 그런 뜻인데, 호주에서 건너와서 작년부터 서울에서 유행한다고.. 인스타그램에서 자주 눈에 띄었던 체육관 로고가 바로 F45의 로고였다. 처음 일주일 무료 트라이얼 기간을 해보고 재밌어서 한 달 무제한권을 등록했다. 월수금은 유산소성 움직임이 강한 운동을, 화목은 웨이트 위주의 운동이 진행되는데, 마치 크로스핏에서 네임드 와드가 있는 것처럼프로그램이 짜여져 있다. 정해진 수업시간에 가서 다른 사람들과 같이 수업을 듣는(운동을 하는) 형식이고, 매일 이 프로그램이 달라져서 지루하지 않고 프로그램마다 로고가 있는 점도 참 재밌다. 하고 나면 300~400 칼로리 정도 소모했다고 측정이 되는데(가민 인스팅트 유산소 기준으로) 땀이 정말 많이 난다. 정말 정말.. 뚝뚝 흐를 정도로.. 운동 후에 로고 앞으로 모여서 다 같이 사진을 찍는데 정말.. 인싸 감성 넘치는 운동이라 깜짝 놀랐다. 코치님들도 다 너무나 활기차고 하하 호호.. 이전에 다니던 어두컴컴하고 땀냄새나던 헬스장, 박스와는 다른 환경이라 새롭다. 처음 트라이얼 기간엔 퇴근 후에 저녁 수업을 가다가 이제는 아침 6:30 수업을 듣고 출근한다. 다행히 회사랑 가까워서 운동 후에 씻고 출근하기 딱 좋은 시간이 된다. 아침에 운동하면 너무 힘들지 않을까 했는데 생각보다 괜찮아서 지속하고 있다. 아침에 공복 러닝은 도저히 못하겠더니, 이건 다른 사람들과 같이 하고 옆에서 코치해주는 사람이 있어서인지 어떻게든 45분 동안 운동을 완수하게 된다. 역시 사람이 의지의 차이야.. 일단 한 달권을 끊었는데 이변이 없으면 계속하게 될 것 같다. 이 아침운동 루틴을 습관화하고 싶다.
이사와 여러 상황때문에 운동 종류와 루틴이 변화하면서 자연스럽게 쉬어갔던 러닝을 다시 시작했다. 주에 1번 정도는 뛰어야지 라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쉽지 않았다. 잊고 있었던 서울마라톤 신청 알림을 뒤늦게 보고 부랴부랴 신청해 두고는 조금씩 연습했다. 약 한 달간 야외 러닝을 안 하다 하려니 페이스 조절도 어렵고, 3KM 뛰는데도 숨이 찼다. 5KM, 7KM, 본 마라톤 거리인 10KM까지 점진적으로 연습하려는 계획을 세웠지만, 역시 퇴근 후 러닝은 체력소모가 너무 컸고, 무릎과 발목도 다친 이후로 예전 같지 않아 매일매일 뛰는 것이 너무 어려웠다. 매일 운동에, 주말 등산으로 제대로 풀리지 못한 피로가 쌓인 탓도 있었던 듯하다. EOD로 라도 뛰고 싶었는데, 날도 추워지고 하니 의지도 약해졌다. 그렇게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채 언택트 마라톤 기간을 맞이했다.
마라톤이 진행되는 3일간, 딱 하루밖에 시간이 나질 않았다. 하필이면 그것도 주말 근무가 끼는 바람에 오전 근무를 하고 오후에 뛰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다행인 건 날씨는 맑고 춥지 않았다. 마라톤 참가 신청을 하면서부터 어디서 뛸까 고민했지만 결국 처음 러닝을 시작하던 트랙 운동장으로 향했다. 익숙한 바닥, 풍경을 마주하고 10km를 달렸다. 컨디션 난조이기도 하고 1시간 안에만 들어오자 라는 마음으로 달리기 시작했지만 절반이 넘어서부터는 제발 완주만 하자는 마음뿐이었다. 페이스 조절은 고사하고 왼쪽 무릎 안쪽이 뒤틀리는 느낌에 한발 한발 땅을 디딜 때마다 고통스러웠다. 정강이도 아파왔다. 다리가 점점 무거워지면서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이 뺨을 타고 턱으로 흘러내렸다. 다치지 않고 운동해야 하는데, 이렇게 무리하다가 다시 달리지 못할까 봐, 회복기간이 길어질까 봐 겁이 났다. 그렇다고 고작 몇키로 더 달리면 되는데, 여기서 멈출 수도 없었다. 그렇게 어떻게든 정말 길었던 10km를 바람대로 59분에 기록하고는 그대로 바닥으로 엎어졌다. 트랙 옆 잔디로 겨우 기어가 하늘을 보고 누워서는 정말 창피하게도 크게 소리 내어 울었다. 4월부터 지금까지, 반년이라는 시간 동안 살면서 겪은 적 없게 열심히 운동했고 다치기도 많이 다쳤던 시간들과 힘겨웠던 감정들이 주마등처럼 한꺼번에 밀려왔다.
지쳐있었다. 내 운동의 시작은 우울이었고, 지속하기 위해 세운 목표는 마라톤 완주였다. 언제일지 모르는 출전을 위해 매일같이 토하기 직전까지 달리고 조금이라도 더 가볍게 달리기 위해 두 달 동안 체지방 8kg를 감량했다. 빨리 무언가 변해야 했다. 알 수 없게 불안해서 쫓기듯이 산에 오른 것처럼, 쫓기듯이 달려왔다. 누가 시켜서 한것도 아니고 나 스스로 발전을 위해 시작한 운동인데, 그 운동하는 시간들이 나의 삶을 바꿀 거라는 누군가의 말에 기대를 걸었지만, 난 또다시 이 운동마저 내 불안에 삼켜지는걸 그대로 보고 있었다. 여유를 가지고 싶었는데, 뒤돌았을 때 그러지 못한 나 자신밖에 남지 않아서 좌절감마저 들었다. 사람 안 변하는구나, 그리고 동시에 후련했다. 속박에서 벗어난 느낌이 들었다. 비록 풀도 하프도 아닌 10km 지만, 코로나로 인한 언택트 마라톤이지만. 나는 번호 20839라는 이름으로 출전했고, 완주했다. 상처를 남겼지만, 목표 달성이었다. 당분간 등산화와 스틱을 넣어놓아야 할 것 같지만, 그래도 그래도 이제야 겨우 운동을 즐길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