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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말정산/2020

7월, 8월 월말정산

by _hailey 2020. 8. 7.

 

바람도 쉬어가는 간월재 휴게소

 

 

 

 여름의 월말 정산이다. 실제인가 믿기 힘들 정도로 맑은 파란 하늘과 뇌우를 하루 안에 볼 수 있는 요즘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변하는 날씨가 마치 내 기분 같아 거울을 보는 듯이 부끄러워져 숙연해진다. 창으로 해가 들고 매미가 울면 여름이다 싶다가도 우르릉 소리와 함께 물먹은 공기가 금세 발밑으로 스며들면 차가운 키보드에 닿은 손끝에 돌던 피가 조금 더 아래로 향한다. 우산을 항상 가지고 다녀야 한다. 보부상이었던 내가 미니멀 라이프를 시작하면서 가방 사이즈를 줄인 이후 가장 무거운 물건이다. 사용하는 날은 비가 와서 싫고, 들고 나왔는데 비가 안 오면 무용지물이라 더 싫고. 무거워서 싫고. 말리지 않고 걸어둔 우산에서 빗물이 흘러 바닥에 고인다. 분명 가랑비였던 것 같은데, 비가 저만큼이나 왔었나? 그러고 보니 머리끝도, 옷소매도 살짝 젖은 것 같다. 우산을 썼는데, 비를 들고 실내에 들어왔다. 또 다른 비도 함께 가지고 들어왔다. 또다시 우울이다. 이제 좀 익숙한가?

언제나 그랬듯이 월말정산을 작성하기 전에 몇 가지 큰 사건들을 단어 형태로 나열한다. 다녀온 곳, 활동한 일, 만난 사람들, 잘 사용한 물건. 이번 달은 폭식이다. 3년 만에 다시 식이장애를 겪었다. 그전엔 안 먹거나 음식을 시켜서 망치고 버리는 행동이었지만 이번엔 다 먹는다. 비위도 상하지 않고 다 먹었다. 다 먹을 수 있을 만큼 체력을 늘려놓은 탓에. 나는 왜 중간이 없냐. 결국엔 음식을 원하지 않아 굶어 쓰러진 경험도, 지나친 갈망으로 토할 때까지 먹다 우는 경험도 다 해보고 나서야 조금 안정된 기분이 든다. 나에게서 한 발자국 떨어져 보니 제 살을 파고들듯이 꽉 쥔 두 손에 한없이 비어 들어간 두 눈으로 원망스럽게 나를 보는 내가 보인다. 얘 또 이런다. 얘랑 잘 지내는 건 왜 이리 힘든지. 

 


 

정착한 지 1년 만에 다시 거처를 옮기려고 한다. 한 달 만에 결정한 일이다. 떠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서. 생활권이 바뀌면 겨우 안정됐던 마음이 또다시 흔들릴걸 잘 알기에 고민 끝에 적당한 곳을 선택했다. 몇 안 되는 친구들과, 내가 좋아하는 장소들이 가까운 곳. 또다시 원룸을 구하면 임시거처 같은 느낌에 어딘지도 모를 내 집을 그리워하는 약해진 마음이 들까 봐 조금 넓은 집을 택했다. 침실에 책상을 두고 옷방을 따로 사용할 수 있는. 구옥이지만 해가 잘 들고 번화가와 멀지 않다. 집주인 내외도 좋은 분들이 신 것 같다. 집을 계약하고 해야 할 일과 필요한 물건들을 정리했다. 혼자 나와서 살았던 이전의 경험이 실패처럼 느껴져서, 이사를 준비하는 내내 다시 혼자서 잘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이따금씩 어깨에 고개를 대곤 했지만 완전히 물리치진 못하고 그냥 그와 눈을 마주치는 정도로만. 그 정도로만 용기를 내기로 했다. 나머지는 시간과 흐름이 알아서 해결해주겠지.

 


 

장마가 시작되기 전 참석한 두차례의 정기 등산모임이 있었다. 아차산과 관악산에 다녀왔는데, 아차산은 해발고도 300m가 안되는데도 불구하고 눈이 즐거운 곳이었다. 서울 가운데 위치해서 그런지 서울 도심과 한강이 한눈에 보이고 등산로도 나무가 우거진 모습이 아닌 언덕길을 오르는 듯이 탁 트여있어 오르는 내내 시원한 느낌을 받았다. 함께 등산한 사람들도 다들 경치를 감탄했다. 산행도 어렵지 않아 다들 산책 다녀오는 기분이었다고. 관악산은 정기 모임이었던 북한산 등산에 내가 요일이 맞지 않아 아쉬운 마음에 다녀온 산이었다. 시간이 맞는 모임원과 함께 다녀왔는데, 비가 오고 흐리다는 예보와 다르게 거짓말처럼 날씨가 좋았다. 정상 가까이에 다다르면 거의 바위뿐이라 바위를 잡고 건너야 하는 산임에도 펼쳐지는 경치와 푸른 하늘이 눈에 담기에 살짝 비현실적일 정도로 멋있어서 자칫 미끄러져 위험할 뻔하기도 했다.

문제는 하산하면서였다. 하산 경로를 잘못 타서 조금은 험한 길로 내려오게 되었는데, 다 내려와서는 다리에 힘이 풀려 돌계단에서 오른발을 접질렀다. 예전 3교대 근무할 때 다쳤던 바로 그 발목이었다. 급한 대로 파스를 뿌리고 다시 등산화를 고쳐 신고 안전하게 하산했지만 완전히 하산 후 무슨 기분이었는지 술을 진탕 먹었다. 그 때문에 염증이 악화가 되었던 건지 발목에 까맣게 멍이 들고 시큰거림이 지속돼서 외래 진료를 보았다. 결국 반깁스 2주 형을 받고 운동 중지 명령까지 받게 되었다. 정말 정말 우울한 2주였다. 나도 모르게 운동에 의존하고 있었던 게 틀림없다. 얼른 깁스를 풀어야 한다는 생각만 가득이었다. 그래서 열심히 진통제를 먹고 열심히 열심히 가만히 있었다. 결과적으로 몸은 불어나고, 발목은 빠르게 회복되었다. 

회복과 동시에 혼자서 광교산을 올라갔다. 아침 일찍 일어나 세수도 하지 않은채 모자를 푹 눌러쓰고 물병 하나 챙긴 채 그대로 버스를 탔다. 반딧불이 화장실 앞의 계단에서 시작하는 등산로 말고, 광교 호수를 빙 둘러 도로가를 지나 밭과 조금 우거진 곳에 있는 음식점을 지나 터널로 향하는 길을 택한다. 이따금씩 밤새 내린 비에 땅이 젖어있는 날도 있었지만 가라앉은 공기를 마시는 동시에 차오른 계곡물이 흐르는 소리를 들으면서 조용히 오르는 길이 좋다.

8월에는 울산으로 원정 산행을 다녀왔다. 우연히 SNS에서 보게된 영남 알프스 종주 사진이 계기가 되었다. 간월재 휴게소의 풍경을 보고 꼭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무가 끝나는 대로 짐을 챙겨 울산행 KTX를 타고 내려갔다. 아침 일찍 산행을 시작해 2시간가량 올라 간월재 휴게소에 이를 수 있었다. 휴게소에서 컵라면 먹고 능선을 따라 간월산 - 신불산 - 영축산으로 쭉 종주했다. 풍경이 너무 놀랍게 아름다워서 미처 사진을 다 찍지 못했다. 때마침 날씨도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이었다. 산을 타는 내내 비현실적인 풍경이 펼쳐져 영남알프스라는 이름을 잘 붙였다 라는 생각이 든다. 다 좋았는데, 영축산까지 정상석을 찍고 하산하는 길이 너무나 힘들었다. 길을 잘못 탄 건 아닌데 욕심을 내서 영축산까지 간 게 화근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6시간 이상 계속되는 산행에 가져온 물은 다 먹고, 태풍이 지나가고 날이 갠 후에 바로 등산을 한 거라 길도 제대로 정비되지 않아 험한 산길에 지쳐 탈진하기 직전의 상태에서 왠지 지도도 제대로 확인되지 않아 조난당하는 건 아닌지 불안한 마음이 컸다. 장시간의 산행에 다리와 발목도 무리했는지 통증도 있었다. 겨우겨우 하산을 끝내고 다른 등산객을 만났을 때 정말 눈물이 살짝 났다. 불안하고 무서웠나 보다. 어쨌든 무사히 하산해 다음날 다시 울산역에서 서울행 KTX를 타고 올라왔다. 무언가 아쉬움이 남는데, 다 종주를 못해서인지, 처음 장시간 산행에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는 생각인지, 꼭 다시 한번 더 방문해야겠다는 생각이다.  

산에 오르면서 점점 더 초록빛에 마음을 주게 되는 나를 본다. 잎의 모양, 뻗어난 가지의 모양과 하늘빛이 닿은 모습, 나무에 붙은 이끼의 감촉, 바람이 가지와 잎을 스쳐 지나가는 소리에 매료되어 자꾸만 산을 생각한다. 사람과 모니터 속의 숫자, 희고 희게 가공되어 나온 종이에 찍혀 나오는 잉크들을 이해하는 평일들에 시간을 쏟고 마음을 쏟고 신경을 쓰는 사이에 산은, 자연은 언제나 내가 마음을 쏟지 않아도 언제나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심지어 내가 그 아름다움을 전혀 알지 못했을 때도. 그래서 자꾸만 산을 생각하게 된다. 

 


 

회사 앞의 크로스핏 체육관에 등록했다. 전부터 크로스핏이라는 운동에 대한 호기심이 있었는데, 이사를 앞두고, 헬스장을 재등록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무슨 운동을 할까 찾아보다가 회사 동료 선생님과 같이 등록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바벨을 땅에 던져대고 내 몸통보다 큰 공을 머리 위로 던지고 받고 쓸 수 있는 인상이란 인상을 다 쓰고 숨을 헐떡이며 운동하는 분위기에 크게 겁을 먹었는데 어느새 내가 그들과 함께 하고 있었다. 정해진 시간 안에 정해진 와드를 수행하면 끝나는 운동이라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러닝이나 웨이트는 내가 무리해서 운동을 하는 건지, 더 할 수 있는데 근성이 부족해서 그만두는 건지 판단이 안 서곤 했는데, 이건 정해진 와드가 있으니 그것만 완수하면 그날의 할 일 끝이라는 느낌이 들어 1회 체험 후 한 달을 등록했다. 계속 나가보고 괜찮으면 더 등록할 생각이다.

 


 

원정 산행을 하고 운동 후 급성 편도염을 크게 앓았다. 약간의 인후통으로 시작한 증상이 열이 39도까지 끓어 어지러워 출근을 할 수 없었다. 첫날은 코로나 검사를 받고 음성판정이 나기를 기다리며 집에서 쉬었는데, 이틀 삼일이 되어도 열이 떨어지지 않았다. 중간에 청구일이 껴있었기 때문에 출근할 생각으로 제발 떨어져라 라고 생각하며 새벽까지 기다려도 떨어지지 않는 열에 응급실에 가서 수액까지 맞았음에도 아침까지 열이 떨어지지 않아 결국 4일 내내 집에서 쉬었다. 정말 아프지 말아야지. 요 몇 년 이렇게 크게 아프다고 생각된 적이 없었는데, 편도염이 이렇게 무서운 줄 몰랐다. 

 


 

인계동의 DOAN 이라는 카페에 다녀왔다. 별다른 특별한 소품 없이도 원목으로 된 가구들로 꾸며져 있어 안정감을 주는 곳이었다. 사방을 둘러싼 창 밖으로 보이는 공원의 모습이 이곳의 가장 큰 매력일 것이다. 디저트와 메뉴도 몇 가지로만 구성되어있어 집중한 느낌이 든다. 애견 동반 출입이 가능한 곳이라 반려견을 데리고 오는 사람들도 있어 조금 소란스러울 수도 있을까 싶었지만 조용히 흐르는 음악을 따라 분위기도 조용히 흐르는 편이었다 앞으로 자주 찾게 될 것 같다.

회사 앞의 엘 그롭이라는 새로운 카페도 다녀왔다. 여러 가지의 예쁜 케이크를 파는 가게였는데, 화이트와 원색, 플라스틱 가구를 섞어 인테리어를 한 탓에 상큼하고 가벼운 느낌이 드는 공간이었다. 라즈베리 크럼블 케이크와 치즈 케이크를 먹었는데 맛도 나쁘지 않았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눈이 즐거운 디저트를 만드는 곳인 것 같아 함께 수다 떨 사람들과 함께 방문하면 더 좋은 장소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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